요즘 하는 것도 없이 괜히 바빠서 신작 애니메이션도 못 챙겨보는 와중에 크게 땅기는 것도 없어서 '클레이모어'를 보기 시작했다. 사실 '클레이모어'는 아주 오래전 부터 만화책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작가의 전작인 '엔젤전설'이 우리나라에서 제법 널리 알려진 덕분에 전부터 어느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 문제의 전작, '엔젤전설'. 이 샷으론 알 수 없지만 좀 맛간 만화다. ㅇㅅㅇ; ]
미리 말하지만 '엔젤전설'은 개그만화다. 한마디로 웃기는 만화라는 말이다. 착하고 선량한 마음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무섭게 생긴 주인공의 외모 때문에 빚어지는 주위 사람들의 오해와 사고로 인해 독자들이 배를 잡게 만드는 그런 만화이다. 그리고 '클레이모어'는 '엔젤전설'과 전혀 상반된 분위기의 작품으로 스스로 비운의 숙명을 짊어진 한 여전사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작품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한가지 문제점.
이 작가... 액션을 정말 못 그린다. -_-
[ 네 이게 바로 액션씬 입니다. 이 친구들은 검을 휘두를 때 팔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_- ]
이게 작가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랄 수 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액션 만화에서 이런 동선을 보여준다면 정말 치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클레이모어'는 '엔젤전설'과 같은 인기를 얻고 있진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적 '엔젤전설'을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이모어'를 싫어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여튼 난 애니메이션은 만화와는 다르게 좀 더 박진감이 넘칠거라 기대를 하고 일단 지금까지 방영된 5화까지 감상하였다. 결과는 의외로 볼만했다. 확실히 애니메이션이니 만큼 원작에 비해 움직임에 박진감이 넘치는데 작가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연출적으로 원작을 따라가려는 모습이 보여 좀 안타까웠다.
[ 왼쪽이 주인공인 '클레어', 오른쪽은 그녀가 클레이모어가 되도록 계기를 제공한 '테레사' ]
인간보다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요마가 인간들의 틈에 숨어 살며 인간의 내장을 취하는 세상. 요마를 처치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 집단을 가리켜 '클레이모어'라 부른다. '클레이모어'는 정확히 말하자면 커다란 투핸드소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그 집단의 전사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모두 '클레이모어'인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들에게 있어 '클레이모어'는 집단을 지칭하는 이름임과 동시에 인간들이 전사 개개인을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전사들에게는 무기 이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한가지 더 있는데 그 것은 전사들의 성별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인간에 비해 압도적인 강함을 보이는 요마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클레이모어'는 모두 '어떠한 조치'를 받는다. 이 조치에 의해 전사들의 몸은 반인반요의 몸으로 바뀌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이 조치는 여성만이 성공할 수 있다. '클레이모어'의 전사가 되면 요마를 압도하는 전투능력과 더불어 은빛의 눈을 가지게 된다. 인간에게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 은빛의 눈과 요마를 베어내는 강함, 그리고 매마르고 차가워 보이는 모습에 인간들은 그녀들을 '은안의 마녀'라고 부른다.
주인공인 '클레어'는 '클레이모어'들이 그렇듯이 본래 인간이었으되 사상 최강의 '클레이모어'이자 '미소짓는 테레사'라는 별칭이 붙은 '테레사'에게 구원받고 어떠한 일을 계기로 그녀 자신도 '클레이모어'가 된다. '클레어'는 '테레사'에 비해 결코 강하다 할 수 없는 일반적인 '클레이모어'로 마물과 싸우며 종종 요력을 개방한다. '클레이모어'가 요력을 개방하면 평소에 비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반인반요의 몸이 요력에 잠식당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고 자아마져 잃어버려 완전한 요마가 되어버린다. 잠식당하는 시기는 전사마다 각자 다른데 느리게 진행되는 전사의 경우에는 가장 각별히 생각하는 다른 전사에게 서신을 보내 인간의 모습일 때 자신을 제거 해 달라 부탁을 한다.
[ '클레어'는 전사로서 훈련받을 당시 가장 절친했던 친구의 요청에 의해 그녀의 목숨을 걷는다. ]
'클레어'는 요마를 퇴치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클레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름없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요마에게 부모를 잃고 형과 단 둘이 살아가던 소년은 '클레어'에게 요마를 꼭 잡아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런 소년에게 그녀는 자신은 의뢰를 수행할 뿐 소년의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 시킨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간 소년의 눈 앞에는 부모를 잃은 형과 자신을 거둬 준 삼촌이 내장을 파먹힌채 처참히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눈 앞에는 소년의 형이 있었는데 형의 모습은 점차 뒤틀리고 거대해지며 요마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요마는 소년의 부모를 잡아먹던 날, 소년을 기절시키고 형의 뇌를 파먹은 뒤 그 모습과 기억을 가진채로 마을 사람들의 틈에 숨어 하나 둘 사람들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클레이모어'의 출현으로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요마는 소년을 잡아먹고 마을을 뜨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나타난 '클레어'가 요마를 참살한다. 임무를 완수한 '클레어'는 그대로 마을을 떠나고 요마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오갈곳이 없어진 소년은 '클레어'의 뒤를 따르고 '클레어'는 그런 소년을 요리사로 삼아 데리고 다니기로 한다.
- 1화의 내용 중 -
[ 주인공 '클레어', 은안과 창백한 피부가 차가운 느낌을 준다. ]
일단 5화까지의 감상 평을 하자면, 애니로서의 '클레이모어'는 꽤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 1화에 나왔던 소년, '라키'의 존재는 만화책에 없던거 같은데 오리지널 스토리가 되려나 모르겠다.(원작에 라키가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아시는분~?) 5화까지 작화붕괴가 없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고 성우의 기용은 실로 미묘함 그 자체. '클레어'의 성우는 '쿠와시마 호코'. 지금까지 맡아온 케릭터를 생각하면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감정이 듬뿍 섞인 목소리라고 생각했기에 이건 좀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5화까지 듣는 동안 그럭저럭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하지만 역시 중간중간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많이 묻어나오는건 어쩔 수 없었다.(차가워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부분에선 요즘 몇몇 애니에서 많이 강조하는 효과음을 들 수 있는데 '클레어'가 길을 걸을 때 마다 나는 찰칵 거리는 갑주음을 듣고 있으면 새삼 '클레어'가 '클레이모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또 전투씬에서 검과 검이 맞부딪칠때 나는 효과음도 기존의 애니에서 들리던 검끼리의 마찰과는 틀리게 공명음이 강조되어 듣기 좋은 점도 마음에 든다.(최근 이런 기법이 쓰인 애니는 슈발리에 정도 였다.)
5화에서는 인간 시절의 어린 클레어와 그 때 부터 최강의 '클레이모어'로 활동하고 있던 '테레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6화쯤에 어째서 클레어가 '클레이모어'가 되는지 알게 될 것 같다. 5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 던 장면은 충격으로 말을 못하는 어린 '클레어'를 잠시 데리고 다니기로 결심한 '테레사'가 '클레어'에게 붙여줄 이름을 강구하다가 자신의 이름이 쌍둥이 여신 '테레사'에서 따온 것을 생각해내고 '테레사'의 자매인 '클레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그게 '클레어'의 진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안 '테레사'가 기뻐하며 '우린 둘 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있었던거야'라고 하자 부모님을 떠올린 '클레어'가 눈물을 흘린다. 거기에 '테레사'는 '울지마,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음은 그 이름에 영원히 남을테니' 라는 말을 남기는 부분이었다.